연재하다가 현재는 중단한 긴카무 입니다만... 그래도 옮겨놓습니다. 언제 다시 연재를 시작할지 아무도 몰라요^0^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람이 아닌 우주인─천인들 또한 상당수가 그 인파에 섞여 있었다. 대에도 터미널이란 곳은 천인과 지구인으로 언제나 이렇게 북적이곤 했다. 사무라이의 나라. 우리나라가 그렇게 불렸던 것은 이미 옛…… 익숙한 멘트는 그냥 접도록 하겠다. 아무튼 그 터미널에는 하루에도 몇 백, 몇 천 명 이상이 왔다갔다 들렸다 가는 곳이기도 했으며 천인과 지구인의 거래가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터미널 내에 생기는 쓰레기의 양은 엄청나며 그게 좋게 쓰레기 통 안에만 있지는 않았다. 바닥이든 카운터든 곳곳 구석구석에 아주 쑤셔 박아놓은 그 쓰레기를 찾아 버리는 것도 일이었다. 그렇다고 쓰레기통 비우는 일이 쉽냐, 그것도 아니다. 새 봉투를 갈아 넣은 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넘쳐 그 주변까지 쓰레기가 수북한 걸 꾹꾹 눌러 담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얌전한 쓰레기만 있는 것도 아니다. 마시고 남은 음료수, 먹다 남은 햄버거, 소시지 껍질이니 뭐니, 그 기분 나쁜 물컹함을 참고 처리를 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구석에서 쓰레기통을 막 비우던 소년은 안경을 추키며 기어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마도 그 옆에 똑같이 청소부 옷을 입고 있지만 한명은 대로에 주저앉아 졸려~ 힘들어~를 뱉어낼 뿐이었고 다른 한명은 배고프다해~ 배가 고프다해~ 이런 부잡한 단어를 뱉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둘 다 일해요! 일!! 이거 수당 짭짤하다고 냉큼 받은 사람이 누군데!” “흐엉? 누구더라. 오오쿠지군이던가, 오쿠지군이던가.” “오오쿠지랑 오쿠지는 또 누구야!!” “시끄럽다 해, 신파치. 네 소음으로 인해 사람들이 불편해하지 않냐 해. 맡은 청소나 잘 하라 해.” “바닥에 떨어진 빵 주워 먹지 마!!” 악을 바락바락 지르면서도 소년──신파치는 손을 움직였다. 어디서 보면 전업주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깔끔하게 쓰레기를 옮겨 담고 주변을 치운 뒤 봉투를 꼼꼼히 묶는 모습에 옆에서 땡땡이치던 둘은 오오하고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덕분에 기분이 좋아진 듯 뭘 이정도 갖고요~ 살짝 몸을 배배 꼬는 행태에 긴토키의 이맛살은 바로 찌푸려졌다. 다 큰 놈이 꽈배기는. 구박은 목 뒤로 삼켜줬다. 그래야만 땡땡이치면서 저 주부습관이 온몸에 밴 놈을 잘 부려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구라 또한 그걸 어떻게 눈치 챘는지 긴토키 옆에서 떨어진 콩고물 주워 먹듯 잘 붙어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당하는 것은 결국 신파치의 몫이었다. 이젠 구박 들어주는 것도 어디냐 싶어, 쓰레받이와 걸레를 대충 정리해 치울 때였다. 바닥에 누워 뒹굴 대던 카구라의 눈이 번쩍 빛나나 싶더니 그야말로 발딱 일어났다. 어디 또 떨어진 햄버거라도 발견했나 싶어 한숨 쉬던 신파치의 눈이 의외의 한 인물로 인해 동그래졌다. “파피!!” 카구라가 와락 달려든 곳은 바다돌이의 품이었다. 넓기도 넓고 높기도 높고 사람 또한 많은 이곳에서 이렇게 딱 마주칠 줄이야. 그것도 하필이면 이런 더러운 일을 하고 있는 도중에 말이다. 아니 그보다 지구엔 언제 온 거냐. 긴토키의 표정을 한 번에 읽은 바다돌이의 표정도 그리 좋은 건 아니었다. 마치 카구라는 내 딸이거든, 너 카구라가 스콘부 먹을 때 몇 번 씹고 삼키는지 알아? 하며 금방이라도 붙을 태세였다. 왜 별 것도 아닌 일에 저리 열을 올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카구라쨩 같은 딸이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아마 밥통이 사라지겠지. 이번 달에도 적자가……. 신파치는 쓰린 위를 달래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구라는 그저 좋다고 바다돌이에게 안겨 있다가 금방 긴토키의 옆자리를 꿰차 앉았다. 거봐, 결국 카구라는 내 옆이 좋대잖아. 승리의 미소를 짓는 긴토키를 불만스럽게 노려보던 바다돌이의 시선이 신파치가 들고 있던 쓰레기봉투로 향했다. 셋을 번갈아 응시하던 그는 결국 노성을 터뜨렸다. “뉘 집 귀한 딸을 쓰레기청소나 시키고 있어!!” “쓰레기 청소 아니거든? 모든 일은 말이야 청결과 정리정돈이 우선시 된단 말씀이지. 그래서 카구라에게 사회생활의 제일 기본인 청결과 정리정돈을 가르치고 있단 말씀이야.” 그래, 그 정리정돈을 당신이 아닌 내가 가르치고 있고 본인은 정작 배울 의사가 없다는 게 큰 문제지만. 신파치는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저 말을 끝내 눌러 삼켰다. 지금 저 둘의 바보 같은 말싸움에 휘말려드는 것은 사양이었으며 무엇보다 아직도 터미널 내에 있는 쓰레기는 엄청났기 때문이다. 즉 쓸데없는 체력소모는 하고 싶지 않았다. 저걸 씹고 그냥 먼저 내려가서 청소를 할까 고민하던 신파치에게 긴토키는 도움의 눈길을 요청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결국 말싸움에서 지고 있는지 무작정 고집부리는 모양새가 참으로 볼만했다. 결국 승자는 바다돌이였다. 망토 안쪽에서 뒤적이던 그는 지갑에서 뭉툭한 봉투를 꺼내 긴토키에게 건넨 것이다. 이런 종이쪼가리가 뭐냐고 툴툴대던 긴토키도 막상 내용물을 보자니 입이 떡 벌어져 그 자리에서 그에게 무릎을 꿇었다. 두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안에 든 건 돈뭉치다, 우리 집 생활비다. 얼마치 생활비인지는 몰라도 엄청날 것이다. 직감하기 무섭게 신파치의 몸은 긴토키의 바로 옆에서 냅다 엎드리는 멋진 굴곡을 보였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10점 만점의 10점. “뭘 해드리면 됩니까!! 부처님!! 예수님!! 마호메트!!!” “이건 선금이다. 일을 완수해내면 이 돈의 배를 주마.” 어두운 표정으로 찬찬히 말을 잇는 바다돌이였기에 무릎을 꿇었던 긴토키의 어깨가 움찔했다. 그리곤 역시나 같이 찡그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어이, 너무 대금인데? 혹시 너네 삐뚤어진 아들내미 바로잡으라는 건 아니지?” “……딱 그거다.” 그리고 긴토키의 표정은 멋지게 일그러졌다. * 하루사메. 우주 최대 범죄 신디케이트라고 불리는 그 집단은 우주해적의 대함선을 끌고 별의 곳곳 모든 곳에 어두운 손길이 뻗쳐있는 단체였다. 강한 것도 강한 것이지만 우주 곳곳에 뻗친 그 어두운 손들은 가히 대단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거대 조직의 정점 중에 하나로 있는 것이─ “배고파, 아부토.” 함선 내 가장 넓은 방을 가졌으면서도 뒹구는 용도 외에 이용하지 않고 있는 제독, 카무이였다. 그 옆에서 자기 책상까지 가져와 열심히 서류정리를 하고 있던 아부토는 두통과 신경성 위장병이 악화되는 걸 체감하고 있었다. 분명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뒹굴고 있는 저 망할 제독의 일일 텐데, 막상 직접 처리하고 있는 것은 아부토 자신이라는 것에 헛웃음만 나왔다. 게다가 도와주는 건 고사하고 영수증 종이를 가지고 학 접기, 비행기 접기, 토끼 접기 등을 하더니 이번에는 밥을 해 달랜다. 까고 말해 지금 정점에 있는 사람이니 아랫사람을 시켜 충분히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무조건 아부토 자신에게 밥을 해달라고 하는 이 상황이 웃기기만 했다. 예전에는 카무이의 왼팔, 운교라도 있어서 쓸 만했건만 이제는 그 놈도 사라진 지 오래고, 카무이의 바로 옆에 남아있는 것은 자기 자신, 한 명 뿐이었으므로 깔끔하게 포기하기로 했다. 최전선에서 실력만큼은 믿을만하니 뭐라고 잔소리하는 것은 적당히 해두고 있었다. 그래도 이번 건은 일이 분명히 컸으니 본인에게도 말해두는 편이 좋지 않을까, 아부토는 그 이유 하나로 지금 카무이의 방에 왔던 것이다. 하지만 쉬이 꺼낼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기에 얼결에 쌓여진 카무이의 서류를 처리해주며 근근 눈치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물론 카무이는 그렇게까지 둔치가 아니었으니 이미 눈치는 채고 있으면서도 아부토에게 입을 열수 있도록 먼저 운을 띄워주는 친절함은 없었다. 더 이상 뭘 바라리. 아부토는 짧게 한숨을 쉬며 그나마 배고프다는 말이라도 해준 제독님께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 나이 먹어서까지 젊은 상관 놈 눈치를 봐야하나. “밥 해 줄 테니 내가 하는 말, 잘 들어둬라.” 평소 같으면 배에 한방 먹이고 밥이나 내놓으라며 으름장을 놓을 녀석이 재밌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얌전히 웃고 있었다. 뭐 네놈은 재밌다 며 깡충깡충 뛸 일이겠지만 이쪽은 전혀 그런 게 아니거든. 속으로 푸념을 삼키며 아부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공식적으로 하루사메가 우주 적대 대상 일등인건 잘 알거다.” “하루 이틀 일도 아닌걸. 새삼스레.” “그래서 이놈들이 대놓고 우리를 처리하겠다며 연합군을 만들었더구만.” 잠시간의 정적이었다. 그래, 목 위로 있는 게 그냥 장식은 아니니까 말이지. 녀석도 생각이란 걸 하나보다 싶어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간만에 기특한 소리를 뱉었다. “아, 예전에 말해준 우주 평화연합이라는 그거?” 아부토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적으로 쏘아붙이는 카무이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다. 아부토에 대한 살기가 아니라 야토가 지닌 피와 전쟁에 대한 흥미본위로 가늘게 뜬 살의였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아부토는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관은 자기보다 강한 녀석, 조직이라면 앞뒤 재지도 않고 뛰쳐나간다는 점도 충분히 위험했지만, 이번에는 급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일반 조무래기 따위가 아니다. 하루사메를 제외한 우주 연합 그 자체인 것이다. 하지만 카무이는 그런 걸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입에 칼을 물고 덤비겠지. 그것이 아부토는 걱정이었다. 이번엔 그리 호락호락 쉽게 끝나진 않을 것이다. 하루사메도, 그 연합도, 카무이도. “……─재밌겠는걸.” 카무이의 파란 눈에 날이 섰고, 아부토는 그런 카무이를 막는 대신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애초에 카무이를 막는 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지만 조금이나마 기대를 걸었던 자신의 바보 같음을 탓하며. 그리고 그 소소한 자책은 전장 문턱에 발을 딛는 순간에도 계속되었다. 딱히 카무이에게 사랑의 감정 따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아까웠다. 저 뛰어난 인재가 이 전장바닥에서 야토임을 자랑스러워하며 죽는다는 사실이 미치도록 아까웠다. 물론 야토로서 전장에 뼈를 묻는 것은 매우 긍지 높은 일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카무이에 대해 아부토의 피와 머리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저 녀석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위로 밀어 올려주고 싶다. 네가 갈 수 있는 정상 끝까지 올라가보라고, 그러기 위해 아부토 자신이 있는 것이라고 계속 생각해왔다. 야토의 피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부토의 머리는 이해했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카구라, 카무이. 매우 흥미로운 남매다. 킥킥, 작게 실소를 뱉자 앞장서던 카무이가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손을 휘휘 저었다. 녀석이 다시 앞을 응시했다. 건너편에는 지평선으로 착각할 만큼 어마어마한 무리의 천인들이 득실거렸다. 저마다 흉흉한 무기들을 들고 하루사메에 맺힌 원한을 풀러, 스스로 죽으러 찾아온 것이다. 물론 저 중에는 야토도 있을 것이다.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에는 흘흘흘 쇳소리 나는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우산을 잡은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전방의 녀석들의 숨통을 어디서부터 끊어야할까 나름 신중한 고민을 품었다. 순간, 아부토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졌다. 아부토의 시선과 정통으로 맞은 남자가 있었다. 이 거리가 그리 가깝지 않았지만 아부토는 직감했다. 눈을 마주치기만 해도 온몸의 기력이 다 빨려가는 듯 한 기분과 절대적으로 내가 진다는 두려움, 거기에 비례하는 싸우고 싶은 야토의 욕망을 일깨우는 감각. 그는, 바다돌이였다. 그리고 그 뒤에는 망토를 뒤집어쓴 인영 세 개가 딱 달라붙어 있었다. 굳이 망토를 헤쳐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구라였다. 그 지구 촌놈들이 틀림없었다. 마주친 시선에서 아부토는 혼란스러웠다. 분명 서 있는 진영은 적군이었지만 그의 시선은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분위기였다. 딱히 쫓아가서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부토는 바로 앞의 카무이를 응시하며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천지가 뒤흔들리는 함성이 동시에 일어났다. 양쪽에서 마치 파도가 밀려오듯 하루사메와 우주평화연합이 격돌했다. 그리고 그 파도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빠르게 사라지는 카무이를 놓치지 않으려 뒤로 바싹 붙었다. 그리고 머릿속으로 복잡한 생각을 애써 정리했다. 카무이는 오직 바다돌이만 보고 달려든 것이었는지 어느새 그 둘은 대치상태였다. 벌써부터 이 전쟁판을 끝장낼 생각이냐고 속으로 투덜대봤자 이미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숨을 고르며 계속 바다돌이를 응시했고, 바다돌이 또한 아부토에게 시선을 맞췄다. 역시, 바다돌이와 아부토는 방법과 목적이 일치하고 있었다. 바다돌이와 카무이가 마주치는 순간 엄청난 굉음에 귀가 먹먹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쪽으로 빠르게 다가온 카구라의 우산을 막았고, 그들은 아부토에게 속삭였다. ‘우리를 따라와라.’ 어금니를 꽉 깨문 잇몸에서 피 맛이 났다. 하지만 아부토는 바다돌이와 나눴던 시선의 확신에 다시금 작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아부토는 주체하지 않고 우산을 눈앞의 카구라가 아닌 카무이의 등에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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