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송하게도 다이스가 합작, 기념일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주옥같은 글과 그림들이 많아요! 즐거웠습니다!!
눈이 뜨인 건 새벽이었다.
스가와라는 잠시간 스산하게 스미는 어둠 속에서 시야를 찾아 눈을 재차 깜박였다. 이제야 막 눈에 익어가기 시작하는 방안의 전경에 스가와라의 입술에서는 자동으로 끄으응 앓는 신음이 새어나왔다. 누적된 피곤함을 투덜거리며 스가와라는 어깨까지 올려 덮었던 이불을 비적비적 치워내고 일어나 앉았다. 아직 덜 깬 수마에 주체하지 못하고 위 아래로 약간씩 끄덕이던 고개를 털어내며 쭉 기지개까지 켜고 나니 확실히 나아진 기분에 스가와라는 하암, 늘어지는 하품을 풀어냈다. 앉은 채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바로 옆에서 냉기가 조금씩 새어 들어오는 창가의 커튼을 젖히자 벌써 해가 오르기 시작한 정경이 보였다.
책상 위 시계를 확인하며 완전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스가와라는 냉장고부터 뒤져 냉수 하나를 꺼내 입에 물었다. 몇 모금 들이켠 후, 능숙하게 리모컨으로 아침뉴스를 틀고 욕실로 들어섰다. 샤워기의 물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릴 리는 만무했지만 스가와라는 아침 뉴스 중간 중간 정보 코너에 나오는 CM송을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샤워를 마쳤다. 수건을 머리에 얹고 책상 한쪽에 말끔히 정리된 스킨을 손 안에 툭툭 털어내다 침대 위에서 바르르 울리는 진동음에 서둘러 얼굴을 두드린 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으으…….
한참이나 늘어지는 신음성이 수화기 너머로 길게 이어지다가 걸쭉한 기침소리를 뱉었다. 스가와라는 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스킨방울을 탁탁 두드려 흡수시키며 웃음을 죽였다.
“괜찮아, 다이치? 그러니까 적당히 거절하라니까.”
―넌 너무 멀쩡하잖아. 윽.
“약속 시간 미룰까?”
깔끔하게 다려져 벽에 걸려있는 셔츠를 한 손으로 능숙하게 내린 스가와라는 팔을 꿰며 다시 한 번 시계를 확인했다. 상대방도 잠시 시간을 가늠하는지 대답이 없다가 부스럭부스럭 잡음이 이어졌다.
―아니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좀 데리러 와 줄 수 있어?
“알았어.”
나머지 한쪽에도 팔을 꿰어 입고는 아래에서부터 단추를 채우던 스가와라가 웃음기 넉넉하게 대답하자 상대방의 입에서 무어라 화도 내지 못하고 앓는 소리가 툴툴대다 멈추었다.
―어어. 좀 있다 보자, 스가.
“응, 다이치.”
통화를 종료하고 휴대폰을 다시 충전기에 꽂은 스가와라는 맨 위 단추까지 채우고선 목 칼라를 올려 넥타이를 걸었다. 손이 다시 바쁘게 움직이며 타이의 매듭을 묶었다. 타이를 다 매고 나니 이번에는 아직 덜 마른 머리카락의 끝을 매만졌다. 어차피 다이치――사와무라와 합류해서 미용실에 들러야한다는 일정을 떠올리며 스가와라는 의자에 걸어둔 수건으로 물기만 다시 털어냈다.
오늘은 1월의 두 번째 월요일, 성년의 날이었다.
∞
미용실이나 사진관을 예약해놓은 시간이 있어서 약속시간을 무르자고 하진 않았지만 데리러 와줄 수 있냐는 말에 상당히 서두르고 있다는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스가와라는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 익숙하게 사와무라의 자취방에 입성했다. 벨을 누르고 이름을 부르자 안쪽에서 제법 우당탕 시끄러운 잡음과 함께 잠깐만 기다리라는 고함이 들려왔다. 답지 않게 서두르는 목소리는 자동으로 풋하는 웃음을 불렀다. 스가와라는 약간 느긋한 기분이 되어 현관문에서 한발자국 물러나 얌전히 집주인 뜻대로 기다려주었다.
얼마 안 있어, 현관문을 텅하니 짚는 소리가 이어지나 싶더니 철제문이 열리고 깡총발로 구두를 꿰차 신으며 사와무라가 튀어나왔다. 정장 마이를 한 팔에 걸고, 넥타이는 목에 두른 채 셔츠 단추까지 두 개 연 상태로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데리러 와달라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올 줄 은 몰랐다는 얼굴이 딱 이었다. 풋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꿀꺽 삼킨 스가와라는 뒤에 철문을 제대로 잠그느라 구두 뒤를 구겨 신는 사와무라의 셔츠 칼라를 먼저 똑바로 매만져주었다.
“어어, 땡큐――헉.”
뒷목이 불편하지 않게 잡아주는 손길에 자연스레 인사하던 사와무라는 똑바로 뒤를 돌자마자 바로 눈앞에 서서 칼라 선을 따라 목 부근을 만져주는 스가와라의 손길에 큰 숨을 삼켰다. 어찌나 크게 들렸는지 스가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목 칼라에서 대충 풀어헤친 단추를 홱 당겨 잠가주며 씩 웃었다.
“내가 무슨 귀신이야? 아주 기겁을 하네.”
“아니, 너무 가까워서…….”
객쩍은 소리를 하며 힐긋힐긋 고등학생 시절보다 한참은 더 낮아진 스가와라를 내려다보던 사와무라가 서먹한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대형견처럼 축 쳐지는 어깨를 보며 스가와라는 도리어 풉하고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급급했다. 습관처럼 풀어져있는 단추 두 개를 목 위까지 단단히 채워주고 올려두었던 목 칼라 아래에 타이를 반듯하게 세워주었다. 일순 쳐진 어깨가 다시 긴장으로 바짝 서는 것을 느끼며 스가와라는 조금 즐거운 기분으로 매듭을 매었다. 타이의 모양을 잡고 길이를 맞춰 올리던 스가와라가 그제야 진득하게 내려오는 시선을 느껴 고개를 들자, 언제나 소년 같을 줄 알았던 남자가 빤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스레 스멀스멀 올라오는 열기를 뿌리치듯 스가와라는 타이를 잡던 손에 힘을 주어 꽈악 잡아당기고 말았다.
“――윽! 스가, 너…….”
“어제 내 말 안 들은 벌이야.”
“선배가 하는 말에, 콜록, 싫다고 할 수도 없잖아.”
항변을 섞어 투덜거리며 사와무라가 기침과 함께 목을 죄여오는 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풀어냈다. 그제야 제대로 잘 다듬어진 모양새에 스가와라는 사뭇 품평회처럼 한 발작 떨어져서 사와무라의 모습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사와무라 또한 이제 마음에 드시냐는 장난질을 섞어 얌전히 팔을 살짝 벌린 채 서 있어 주었다.
배구를 하면서 벌어진 어깨와, 잘 다져진 골격,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오면서 유지된 근육의 신체가 반듯한 셔츠핏으로 인해 더 금욕적으로 보였다. 저도 모르게 멋있다고 생각해버린 스가와라가 먼저 몸을 돌리며 앞장서곤 이어서 잔소리를 뱉었다.
“얼른 마이랑 코트부터 입으시죠? 그러다 이번엔 또 감기 걸린다?”
“네, 네.”
더 이상 투덜거려봤자 이길 수 없다는 정도쯤은 알아서 사와무라는 쉽게 동조해주었다. 사와무라의 맨션을 나와 미용실이 있는 큰길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다. 평소 운동화 종류를 많이 신던 발이었기에 부쩍 갖춰 신은 정장 구두가 불편하게만 느껴져서 스가와라의 걸음이 더디어졌다. 사와무라 또한 그렇게 익숙하다고 할 만한 것은 못되었지만 몇 번 봉사활동을 겸하여 나섰던 인턴 활동의 습관 덕인지 평소 걸음걸이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평소처럼 빨리 걸을만한 성정은 되지 못했다. 스가와라의 걸음에 맞춰 사와무라는 조금 느긋하다 싶을 정도로 여유롭게 미용실을 향했다.
거리에는 벌써 스가와라나 사와무라처럼 정장, 후리소데를 갖춰 입은 동갑내기들이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매 해 바라보는 입장이었던 만큼, 지금의 본인들은 매우 쑥스러우면서도 두근거리는 흥분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제나 저제나 성인이 될까, 한 사람의 몫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고대하면서도 두려워한 성인이 되는 날이다.
가장 아름다운 날.
사와무라와 스가와라가 있는 나라에서는 성년의 날을 그렇게 불렀다. 그래서 머지않은 고향집에서 보내오는 정장까지 갖춰 입고 둘은 머리를 짧게 하는 용무 이외로 처음, 미용실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꼼꼼한 스가와라가 미리 예약해두지 않았더라면 한참을 앉아서 시간을 버려야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뉴스에서 이 상황을 간접적으로 접했다한들 심각한 위기 성을 느끼지 못했던 사와무라는 매우 놀란 눈치였다. 그런 사와무라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찍으며 스가와라는 씩 웃었다.
“거봐, 내 말이 맞았지?”
약간 얄미울 법도 한, 개구진 미소가 서렸다. 사와무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순순히 패배 아닌 패배를 인정했다. 입고 있던 코트와 겉옷을 벗자 바로 목에 가운이 둘러졌다. 생소한 기분에 스가와라 쪽을 보자 스가와라도 가운을 두른 사와무라를 보며 풋하고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반강제로 세면실에 들어가 스킨 바른 얼굴에 세수를 하고 나오자 미용사들의 손이 바쁘게 얼굴 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냥 스킨과 로션만 바르던 피부 위로 남성용 메이크업 크림들이 차례차례 발라졌고, 생전 처음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라는 것까지 접하게 되었다. 얼떨떨한 기분보다 워낙 사람도 많고 분주해 정신없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얼굴 위의 전쟁이 끝나나 싶더니 이번에는 머리였다. 잘 감고 오셨다며 메이크업이 시작된 이래 첫 칭찬 한 마디를 들은 후, 사와무라의 머리는 왁스와 스프레이로 깔끔하게 뒤로 넘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길게 기르는 편이 아니어서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거라던 생각과는 달리 사와무라는 내심 놀랐다.
“수고하셨습니다~”
역시 꾸미는 것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구나.
새삼스레 깨달아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난 사와무라의 옆자리에서도 수고하셨다는 직원의 한 마디와 함께 스가와라가 내려왔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를 빳빳하게 세워 뒤로 넘긴 사와무라와는 다르게 평소 가르마에서 왼쪽 이마를 조금 더 드러내며 넘긴 스가와라가 어색한 웃음으로 가운을 벗고 있었다. 가운 때문에 삐뚤어진 제 넥타이 매듭을 다시 손보던 스가와라는 기어이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던 사와무라에게 쓴 소리를 뱉었다.
“너 아침부터 자꾸 귀신 보듯 할래?”
“아니……. 어, 그게 아니라.”
우와.
저도 모르게 예의 없는 감탄사가 툭 나와 버릴 뻔 했다며 사와무라는 더 실언을 하는 대신 입을 다물었다. 옆의 직원이 독촉하지 않았다면 끝까지 가운을 벗지 않았을 만큼 사와무라는 매우 동요하고 있었다. 여전히 놀란 눈을 끔벅이기 바쁜 사와무라의 옆구리로 스가와라의 손날이 콱 박혔다. 고등학생 때부터 익숙하게 얻어맞아왔던 촙이었지만 그렇다고 익숙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익숙함을 찌르는 얼얼함보다 눈앞의 스가와라 모습이 더 크게 다가와서 사와무라는 옆구리를 문지르면서도 쉽사리 눈을 떼지 못했다. 약간 흐트러진 셔츠 품을 제대로 잡는 사와무라의 곁으로 어느새 정장을 깔끔하게 갖춰 입은 스가와라가 다가왔다. 그러곤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레 사와무라의 타이 매듭 모양을 다듬어주었다.
지금까지 정갈한 가르마로 반듯한 이마가 보였다면 오늘은 왼쪽으로 조금 더 가르마를 탄데다가 완전히 넘겨서인지 평소보다 더 하얀 피부 위로 눈물 점이 도드라져보였다. 더 부드럽게 휘어 또렷한 눈매도, 이제 막 젖살이 빠지기 시작한 턱 선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부끄러운 듯, 뚫어지게 주시하는 고동색 시선을 교묘하게 피하는 스가와라에게 사와무라는 혼잣말처럼 낮게 중얼거렸다.
“……예쁘다.”
사와무라는 다시 타이에 목이 졸려 기침을 한 사발 쏟아내야만 했다.
∞
“자, 조금만 더 웃으시고――”
조금 더 웃으려야 웃을 수가 없다. 사와무라는 바로 정면, 사진사 뒤에 서서 보란 듯이 놀리며 혀를 쏙 빼고 있는 스가와라가 신경 쓰여 웃음을 참느라 급급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웃으려고 했다간 분명 속사포처럼 웃음이 터져버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다시 또 실없는 웃음이 비죽비죽 입술에서부터 새어나갈 것만 같았다. 젊은 사람이 참 표정에 둔하다며 몇 번이나 사진을 다시 찍고, 결국 사와무라는 기력이 다 빠져 의자에 축 늘어지고 말았다.
사와무라보다 먼저 사진을 찍었던 스가와라가 아주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하고 냉수 잔을 건네주러 다가왔을 때였다.
“저기, 죄송합니다. 혹시 사진 한 장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느닷없이 푹 늘어트렸던 고개를 들며 이야기하는 통에 스가와라는 사와무라의 손을 피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손목을 내어주고 말았다. 냉수 잔을 의자 뒤편에 내려놓으며 사와무라는 씩 웃어보였다.
“이렇게 둘이서 찍어주세요.”
“안 될 건 없지. 이번엔 제대로 웃으셔, 젊은이.”
“잠깐만, 다이치!”
놀란 토끼 눈을 해선 잡혀있는 손목을 비틀어 빼려던 스가와라는 막상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사와무라의 눈짓에 그대로 하던 행동을 멈추고 말았다. 분명 웃음기 서려있지만 특유의 카리스마를 품고 있는, 스가와라가 잘 아는 사와무라 다이치의 강제력이었다. 굳이 사와무라가 입을 열어 이야기할 필요도 없었다.
스가와라는 짧은 포기와 함께 사와무라가 앉아있는 1인용 소파 팔걸이 옆으로 걸터앉았다. 스가와라가 편히 기댈 수 있도록 사와무라가 반대쪽으로 살짝 기울여 앉았고 잠시 망설이던 손을 스가와라의 허리에 감았다. 저도 모르게 긴장으로 헉하고 굳어버린 신체가 느껴졌지만 사와무라는 허리에 감은 팔에 힘을 실어 단단히 그를 받쳤다. 약간 제 쪽으로 당겨 안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오죽 친한가봐?”
“뭐, 그렇죠.”
마음 같아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볼을 확 꼬집어주고 싶었지만 스가와라는 그저 웃고 넘겼다. 이렇게나마, 바닥 잔잔하게 남아있는 아이 같은 고집을 끄집어내서까지 사와무라가 하고 싶은 것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스가와라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오늘은 가장 아름다운 날. 그런 날 남기는 사진 한 장. 그리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스가.”
“나도, 다이치.”
가장 아름다운 날의 너와 함께하는 추억.
사와무라 다이치와 스가와라 코우시는 이제 막 완전한 성인이 되어가는 도중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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