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3일 미식협 [해7a] 에서 나올 '오! 나의 배우님!' 2차 샘플입니다.

별도의 선입금예약은 없으며 수량조사에 최대한 맞춰 현장판매와 행사 이후 통신판매로만 진행합니다.

현재 표지는 준비중에 있어 완성 되는대로 정리된 인포와 함께 뵙겠습니다.


>>>수량조사 바로가기(~17일까지)<<<



3.


 김독자는 퍽 민망한 상황에 부닥쳐있었다. 물론 본인이 자초한 결과지만 그래도 접싯물에 코 박고 죽고 싶을 만큼 민망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도 그럴 듯이 그는 어떻게든 시간에 맞추려고 바로 오늘 아침까지 격무에 시달렸다가 튀어나오느라 옷조차 갈아입지 못한 상태였다. 그나마 전날, 퍽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잘 차려입은 일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으나 막상 주변의 시선들을 빌어보자면 약간의 역효과도 있는 듯싶었다. 


 아니지. 가장 정확한 시선 강탈범은 아마도 김독자가 품에 안고 있는 이 꽃다발일 것이다. 커피와 자양강장제가 뱃속에서 한 데 섞여 몽롱한 반각성 상태였던 김독자는 모든 기안서 검토를 끝내놓았으니 오늘은 본인을 찾지 말라는 메모와 함께 부리나케 탈출하는 즉시, 출퇴근길 오며 가며 눈독 들였던 꽃집으로 향했다. 이제 막 화분들을 하나둘 내어놓으며 물을 주느라 여념이 없던 점원은 그런 김독자의 행색에 잠시 놀라는가 싶더니 이어서 꽃다발을 사러 왔다는 용건에 또 한 번 놀라버렸다.


 그야 당연했다. 행색은 멀끔할지 몰라도 짙게 드리운 눈그늘 하며, 표정까지 ‘상태가 영 아니올시다’를 문장 그대로 표현한 남자가 가게 문 열자마자 꽃다발을 사러 왔다며 쫓아왔는데, 어느 누가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오늘 제일 싱싱하고 예쁘게 핀 거로 만들어 주세요.”

 “여자분에게 선물하시나요?”

 “아니요, 아, 선물은 맞는데 남자요.”

 “……그럼 크기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잠시 점원이 당황한 듯 말을 잠시 머금었다가 다시금 물었다. 김독자는 그런 소소한 착각에 연연하기는커녕 제법 심각한 얼굴을 하고 점원이 보여주는 꽃다발 치수를 눈대중으로 어림잡아 이리저리 둘러보더니 가장 안쪽 웬만한 중형 꽃바구니 크기만 한 다발을 가리켰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실내 장식용이라고밖에 보이지 않을 그것을 김독자는 매우 태연하게 그리고 진심인 양 점원에게 요구했다. 그걸 옳다구나 바로 주문을 받을 수도 없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얹었다.



 “이거 손님 품에도 꽉 찰 정도로 큰데, 그래도 괜찮으실까요? 거기다 60만 원대로 금액도 엄청 높아지는데…….”

 “네. 그 크기로 만들어 주세요.”



 번복은 없었다. 김독자는 오히려 더 상쾌한 얼굴로 얼핏 미소까지 곁들여가며 가게 안쪽으로 성큼 들어섰다. 주변 가득 물기를 머금어 한층 더 싱싱해진 꽃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품새를 보아하니 점원은 오늘 첫 손님부터 엄청난 게 걸렸다며 속으로 환호 반, 귀찮음 반이 아우성치는 기분인지 표정관리가 약간씩 늦어지는 듯 보였다. 


 기어코 가장 싱싱하고 예쁘게 핀 꽃을 고르는 점원의 손에 따라붙어 요모조모 상한 곳은 없는지 꼼꼼히도 둘러보던 김독자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 품에 넘쳐 흐를 듯 몇 종류의 꽃가지가 안겨서야 만족한 듯 의자에 앉아 포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그의 특별한 관심은 슬그머니 자리 잡고 앉은 궁둥이처럼 순순히 사그라들 기미가 없었다. 직원의 손이 꽃다발을 두를 포장지 사이를 헤매는 동안, 그의 눈 또한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나 싶더니 냉큼 고개를 저으며 버럭 목소리를 높아졌다.



 “그거 말고 바로 뒤에!”

 “네?!”

 “……있는 포장지가 나을 것 같아요.”



 화들짝 놀란 나머지 튀어나온 새된 점원의 단말마에 덩달아 놀란 김독자는 어색하나마 얼른 평이하게 톤을 낮추려 노력했으나 바닥을 찍은 이미지까지는 회복하지 못했다. 어색하게 웃어 보이자 점원도 겨우 다시 미소를 되찾기는 했으나 그녀의 손은 김독자가 정해준 포장지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 후, 또 하릴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투명한 비닐을 집었다가 불투명한 레이스 무늬가 들어간 비닐을 집었다가 정처 없이 눈 없는 손이 길을 잃었고, 김독자는 그것을 너그러운 손님의 시선으로 관망하기엔 진작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넌 진상 팬이었다.



 “깔끔하게 투명한 비닐로 제일 안쪽에 감아주시고요. 맨 겉면은 아까 집은 연하늘색이랑 어울리게 남색이 좋겠어요. 네, 그거요. 제일 짙은 거. 그리고 리본은 골드 펄로요. 그리고 카드도 쓸게요. 봉투 색은 그냥 무난하게 흰색으로 주세요.”



 어째 퇴근을 했는데도 다시 회사로 돌아온 기분에 김독자는 쓴 입맛을 다시며 안 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들었다.


 김독자가 앉은 테이블 위로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봉투와 카드가 내밀어졌다. 동글동글한 양각으로 레이스와 장미무늬가 박혀있는 카드를 뒤집어 만질만질한 부분을 엄지로 무심코 쓸어보던 그는 여기까지 왔으면서 괜스레 후회가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완전 팬이에요!’


 그도 그럴 듯이 이렇게 잠시나마 눈을 지그시 감으면 아직까지 귓가에 한적한 주말 오후의 공원에 쩌렁쩌렁했던 제 목소리가 빙글빙글 노닐고 있었기 때문이다. 팬은 팬이지, 그것도 사생팬 못지않게 징글징글한 진상팬 말이다. 자연스레 되짚어진 회상은 만년필 뚜껑을 열던 김독자가 난데없이 머리칼을 쥐어뜯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옛말에 첩첩산중, 설상가상이라 했다. 선인들의 말씀은 거의 아귀만 갖다 맞추면 웬만한 예언 못지않다지만, 이렇게 얄밉기까지 할 일 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한수영의 표현을 빌려 ‘김독자 고성방가 팬밍아웃 사건’이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이 시국에 하필 유중혁의 생일이 코앞이라는 사실은 하늘이 김독자의 팬심을 시험하는 것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이없이 맞아떨어진 이 빌어먹을 우연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내가 심즈를 굴려도 이보다는 훨씬 더 나을 거라며 신이라는 플레이어를 욕해보았자 변하는 건 없었다. 김독자는 팬이라며 고래고래 온 세상에 대고 소리를 질렀고, 오늘은 유중혁의 생일이다. 


 그리고 김독자는 팬으로서 처음으로 맞는 중요한 오늘을 소득 없이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꽃다발 준비 다 되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결제는 이걸로 해주세요.”

 “68만 원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 할부는―”

 “일시불이요.”

 “…네.”



 이제야 겨우 만년필을 고쳐 잡은 김독자에게서 신용카드를 받아 든 점원은 무어라 이루 말할 수 없는 묘한 표정 위로 미소를 덧씌웠다. 이어서 그녀의 시선은 이제 겨우 딱 한 줄 적은 카드 위로 떨어졌다.


 유중혁 씨에게.


 딱딱하게 적은 상투 어구에 선뜻 같이 굳어버린 점원을 향해 김독자는 카드를 한 손으로 깔끔하게 구겨버리며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미소했다. 그렇다고 해서 바싹 마른 입술을 축일 순 없었으나 민망한 시선을 피하기에는 적격이었다. 덧붙여 첫 문장을 생각할 시간도 벌었다.


 To. 유중혁.


 제일 무난한 시작을 한고비 넘기자 다행스럽게도 다음 이어지는 말은 술술 써졌다. 사각사각 종이를 긁으며 검은 잉크가 물들어 완성된 한마디 말로써 비로소 썩 괜찮은 생일 축하 카드가 완성되었다. 요 며칠 계속 귓가에서 놀려대던 환청은 어디 가고 뿌듯함만이 남아 김독자는 피식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짜식. 그래도 생일이니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이윽고 영수증과 함께 되돌아온 신용카드를 받아 챙긴 김독자는 그제야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하얀 봉투에 생일 축하한다는 짧은 글귀가 적힌 카드를 한 번 더 봉하고 그대로 완성된 꽃다발 속 캄파뉼라와 장미 사이 안쪽에 끼운 그는 테이블에 남은 영수증을 본 체도 하지 않고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영수증은 버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그래, 딱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김독자는 더할 나위 없이 신이 난 상태였다. 마치 유중혁을 찍을 새 렌즈를 지르고 돌아오던 바로 지난 주말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엔딩은 구태여 다시금 떠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창피한 기억인지라 김독자는 얼른 생각을 전환했다.


 행여 흐트러질까 조심조심 품에 안은 오늘 가장 아름다운 꽃다발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고, 향기만 맡아도 산뜻해졌다. 그렇게 구름을 걷는 듯 사뿐사뿐하기만 했던 그 발걸음은 정확히 그리 크지 않은 빌딩 숲 주차장에 들어서면서부터 1톤짜리 무게추를 단 것 마냥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무심코 욕지기가 튀어나오기 충분하리만치 비용대비 극악인 도심 한복판의 주차비용을 곁눈질하면서도 주차권을 받아든 김독자는 그 잠깐의 찰나, 지금이라도 되돌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를 한발 늦게 고민했다. 차라리 꽃집에서 바로 퀵을 보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바로 눈앞에서 완성된 꽃다발이 예상보다 훨씬 마음에 들어서 너무 들떠버린 탓이었다. 오만가지 후회가 머릿속을 휘젓고 다니는 와중에도 착실히 빈 자리를 찾아 무사히 주차를 끝낸 김독자는 그대로 핸들에 머리부터 박아버렸다. 그리고는 연신 한숨을 털어놓는가 싶더니, 꾸물꾸물 고개를 들어 백미러 너머로 마주친 제 얼굴에 대고 냅다 욕부터 쭝얼거렸다.



 “저번 주에 완전 이상한 사람으로 도장 찍혀놓고 뭐가 그렇게 신난 거냐, 멍청아. 어휴…….”



 자책에 한탄을 실어 투덜거린 그는 여전히 핸들을 쥔 손에 꾹 힘을 주고는 또 한 번 냅다 머리를 박아버렸다.



 빠아아아앙――!!

 “―악! 깜짝이야!”



 이보다 더 멍청할 순 없었다. 아무리 실의에 빠졌다지만 핸들 한가운데에 이마를 들이박은 거로도 모자라 스스로 놀란 나머지 앉은 자리에서 펄쩍 뛰기까지 했다. 본 사람도 없을 텐데 목은 물론이오 귀까지 붉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얼결에 땀을 쥔 손바닥으로 역시 식은땀이 살풋 맺힌 이마께를 슥슥 닦아낸 김독자는 끄으응 앓는 소리까지 스스럼없이 내더니 이번엔 뒤로 고개를 젖혔다. 그래 봤자 오만 걱정 탓에 뻐근해진 뒷목이 시원하게 풀릴 일은 없었고 대신 뒷통수가 살짝 저렸다. 이마에 올려놓았던 손을 그대로 살짝 내려 눈가를 덮어버린 그는 질리지 않은 한숨만 연달아 내쉬었다.


 지금이라도 물러? 말아? 그냥 눈 딱 감고 가? 다른 사람 시켜서 부탁해? 잠깐, 부탁?



 “아! 경비한테 맡기면 되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끝말잇기처럼 이어지던 생각의 연쇄는 문득 떠오른 동아줄 하나에 얼른 그 궤도를 달리했다.


 제법 그럴듯한 구색이 차곡차곡 갖추어지자 실행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만 너무 큰 나머지 조수석에 모셔놓았던 꽃다발을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공들여서 꺼내는 순간, 잠시 가슴 한쪽에 쭈그러져 있었던 공허함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도대체 내가 뭐 때문에 이러고 있는 거지?


 그러나 그 질문이 마저 끝을 겨누기도 전에 김독자 본인의 필체로 또박또박 적힌 ‘유중혁’이라는 이름 하나가 그 허무를 단숨에 채웠다. 거기다 어렴풋이 하지만 자연스럽게 미소부터 흘러나오게 김독자를 홀렸다. 고작 이름 하나만으로, 그것도 자신이 쓴 이름 하나만으로 말이다.


 아침 해가 밝자마자 거의 직접 고르다시피 참견하고 진상 피워가며 한 아름의 꽃다발을 샀다. 그리고 여기까지 아무 생각 없이 설레기만 해서, 그러는 와중에도 행여나 꽃이 망가질까 조심조심 운전해왔다. 즉, 물러나기엔 한참 늦었다는 뜻이었다. 어찌어찌 번민하는 몸뚱이를 끌고 주차장에서 나와 유중혁의 소속사 빌딩까지 터덜터덜 걷는 내내, 김독자는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궁금증으로 점철된 관심들에 눈 둘 곳을 찾지 못해 땅바닥만 주시하며 무거운 다리를 바삐 움직였다. 그렇게 야트막한 후회와 자기 위로를 거듭하던 김독자는 익숙한 로고를 마주하고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스타 스트림, 대한민국 최대의 엔터테인먼트 기획사. 한참 뒤에 회사가 더 성장하고 나서야 광고 모델을 위해 마주할 줄 알았던 이곳에 김독자가 입성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생일선물을 전해주려고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바람만큼 마냥 순조롭게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저기 진짜 이것만 전해주세요. 이거 보세요. 그냥 꽃다발이라니까요.”

 “우린 이런 거 안 받아준다니까, 글쎄!”



 그렇지 않아도 근방에 기획사만 잔뜩인 동네인지라 정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부터 상당히 민망하건만, 품에 가득 차고도 남는 꽃다발까지 신줏단지처럼 소중하게 안고 돌아다닌 탓에 김독자의 민망함 수치는 한계를 넘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런데 단순히 경비에게 맡기면 될 것이라 믿었던 계획은 바로 코앞에 완결을 두고서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말았다. 이 정도쯤 큰 기획사라면 따로 팬레터나 선물들을 관리하는 부서라도 있을 텐데 미리 찾아볼 것을 또 사서 고생했다며 김독자는 심란한 마음에 꽃다발을 쥔 손에 꾹 힘을 주었다.



 “진짜 그냥 이것만 전해주시면 됩니다. 네? 아니면 담당 부서로 전달이라도…….”

 “아, 거 참! 누구 줄 건데 자꾸 이러는 거요? 멀쩡하게 생긴 양반이! 그, 뭐냐, 안나 크로프트요? 그 아가씨야?”

 “아뇨! 유중혁이요!”

 “유, 뭐? 그런 이름이 여기 있었나?”



 그저 가벼운 실갱이로 끝이 났더라면 참으로 편할 일을 김독자의 팬심은 그리 너그럽지 못했다. 아차 싶은 순간, 이미 그는 딱딱하게 굳힌 얼굴로 초면에도 무례할 정색을 선보이고선 믿을 수 없다는 양 되물었다.



 “…아저씨, 설마 유중혁 모르세요?”

 “……유중혁?”



 또 한 번 되돌아오는 물음 끝으로 김독자는 뚝하고 퓨즈 끊기는 환청을 들은 것만 같았다. 그나마 아주 좁쌀만큼 남아있던 정상사고 회로가 서둘러 목소리를 잠기게 해준 덕분에 공원에 이어 기획사까지 쫓아와 고성방가를 저지르는 김독자 28년 인생 초유의 사태는 면할 수 있었다. 


 다만 울컥 튀어나가려던 것이 목 안으로 잠겨버린 탓에 마른기침이 터진 것까지는 참기가 힘든지라 한 손으로 들기는 퍽 힘든 꽃다발을 멀찍이 자신에게서 떨어트려 잡고는 눈가가 젖을 만큼 콜록콜록 한참을 기침만 쏟아내고서야 김독자는 겨우 다시 제 앞을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앞에 있는 것은 귀찮음과 피곤함이 세월처럼 덕지덕지 엉겨 붙은 중년의 경비원이 아니었다.



 “……공원. 맞지?”



 검은 모자와 검은 마스크를 쓰고도 훤칠하고 다부진 체격으로 잘생김을 미친 듯이 내뿜는 유중혁이 서 있었다. 그것도 기침하느라 떨어트려 놓았던 꽃다발을 내민 정방향에 말이다. 정말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꽃다발에 꽂아두었던 카드까지 유중혁을 향해 있어 수치심을 배로 증가시켰다. 그런 속도 모르고 유중혁은 가만히 그 카드만 쏙 집어 내용물을 펼쳐보았다.


 [태어나줘서 감사합니다.]


 카드 한가운데에 떡하니 적혀있을 고작 단 한 마디를 유중혁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눈으로 필체를 훑었다.



 “아니, 그게, 저……는 그냥…. 근처 지나가던 길에…… 그러니까 팬은 맞는데 지나가다가 생일인 게, 아니 유중혁 씨, 유중혁 님 생일인 건 원래 알았는데요.”

 “…….”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에도 유중혁의 시선은 카드의 필체를 그대로 덧그리기라도 하는 양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가 카드 뒤편으로 화사하게 핀 꽃다발로 향했다. 이어서 여전히 빠른 속도로 흔들리는 김독자의 동공 지진에 닿았다.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는 김독자 본인에게만 또렷했다. 정말이지 잘생겼다는 말을 그대로 구현한 얼굴이었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마주친 시선조차 선망으로 매료되고 마는 무언가가 유중혁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김독자는 마치 맹수 앞에 굳어버린 사냥감처럼 전신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은 물론이오, 한번 크게 들이쉰 숨소리 이후로는 신경이 쓰여 호흡 자체가 힘들어졌다. 자연히 힘을 잃고 무게중심까지 잃어버린 김독자의 신체는 뉴턴의 사과처럼 속절없이 땅바닥을 향해 고꾸라지려던 차였다. 


 고성방가에 이어 이번엔 무릎 꿇고 꽃다발인가, 기어코 추가된 명예의 이불킥 전당에 감격한 김독자는 이윽고 무릎에 닥쳐올 재앙에 눈부터 질끈 감았으나 현실은 한층 더 상승한 민망함을 김독자에게 선물했다.



 “언제까지 눈 감고 있을 거지?”



 평소 욕을 즐겨 하지 않는 김독자였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상황에 이끌려 자연스러운 현상처럼 흘러나올 뻔했다.



 “……미쳤네. 얼굴이 진짜 미쳤어.”



 대신 더 솔직한 진심이 신이 나서 대타로 튀어나왔다.



 “……나에게 하는 말인가?”



 그리고 묘하게 일그러진 미소의 유중혁이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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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연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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